세상이 하얗게 눈으로 덮혀 있었다. 그런데 정말 거대한 사람에 의해 굵은 선이 그어진 것 처럼 눈 덮힌 커다란 산맥을 지나니 순식간에 지열이 피어 오를 것만 같은 무더운 풍경으로 바껴가는 것을 창 밖을 통해 확인 할 수 있었다. 크고 낮은 산을 볼 수 없고 바둑판 처럼 평편한 넓은 곳에 수 많은 집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차가운 기류에서 무더운 기류로 바껴서 인지 비행기는 좌우로 몹시 움직였다. 나쁜 생각은 하지 않으려 했다. 안데스 산맥 조난기가 떠오르는 이유가 뭘까? 오클랜드에서 우연히 보게 된 올블랙스의 거친 럭비 경기가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분명 그때 럭비 선수들은 남자다움을 시각으로 충분히 느끼게 해줬었다. 고개를 저어가며 그들을 떨쳐 보낸다.
델리 국내선 공항은 더웠다. 릭샤왈라들은 공항에 들어 올 수 없었는지 반팔 입은 택시 기사들이 도로를 메우고 있었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한동안 씻지 못했던 몸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눈치 없는 택시 기사들은 내게 목적지를 물었지만 그들이 집요함보다는 씻지 못한 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부재로 그들을 피했다. Pre- paid Taxi 부스를 찾았다. 뉴델리 역까지는 165루피, 짐하나에 10루피를 더해서 185루피이다. 가격을 흥정 할 수가 없었다. 인도정부에서 운영하는 것이니 조금 더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비교적 마음의 부담이 없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정말 일만 열심히 하는 아저씨는 영수증을 내게 건냈고, 영수증에 적혀 있는 18번에 정차하고 있는 택시를 찾았다. 그도 몹시 더웠나 보다. 민소매를 입고 있던 그의 상체는 훤히 드러났다. 복장은 불량했지만 그의 능력을 확실했다. 차선의 존재가 부끄러울 만큼 자유로운 그 길었던 도로를 사고 한번 없이 통과했다. 고단함이 몰려왔지만 무거운 눈꺼풀을 지탱하고 있어야 했다. 새로운 세상에 왔다는 즐거움과 호기심으로 나는 도로 풍경을 눈에 담았고 빠르게 움직이는 택시안에서 양측 도로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았다. 강렬했던 햇빛을 피해 담벼락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단지 50여개의 벽돌로 입구를 만들고는 위에 낡은 천막을 덮었다. 그 곳에 사람이 살았다. 혼자가 아닌, 다수의 사람이 그 좁은 공간에 있는 경우도 있었다.
택시는 빠하르간지에 멈췄다. 이 곳은 여행자 거리라 불릴정도로 세계 각국의 배낭멘 젊은이들이 거쳐가는 곳이다.
수 많은 콧수염 아저씨들이 가게를 지키고 있다. 호객행위도 제각각이다. 그들이 파는 물건 중에는 세계적인 아웃도어 브랜드들의 엉성한 로고가 박힌 등산용품이 대다수이다. 물론 인도분위기 물씬 나는 옷을 파는 가게도 많다. 어렷을적 어머니의 손을 잡고 방문한 시장같다. 물론 동해안에서 꽤 유명한 추억의 '죽도시장'은 지금은 현대화를 거쳐 키 작았던 나의 기억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필요한 물건은 없었지만 가능한 많은 상점을 방문하고 싶었지만 몹시 지친 내 몸에 휴가를 줘야만 했다. 처음 알아봐둔 Downtown Hotel를 찾는다. 이름만 호텔이다. 호텔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기준이 있을텐데 문득 궁금해졌다. 나보다 먼저 온 포르투갈 국적의 젊은 남녀 5명이 로비를 점령했다. 5명 중 2명은 이미 객실을 보고 왔나보다. 두 사람은 전혀 만족스럽지 못한 표정으로 나머지 세 명에게 그들이 보고 느낀것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유난히 큰 메낭을 맨 한 남자가 귀찮다는 듯 그냥 다른데 갈 것 없이 이 곳에 머물자고 한다. 그러고는 나를 힐끔 쳐다 본다. 그리고는 살짝 웃는다. 왜 웃는거지. 생각보다 객실요금은 비쌌지만 나 역시 시간이라는 녀석을 더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400루피를 지불하기로 했다. 많은 곳에서 보일러온수가 보급되어 있지 않았고, 나 역시 양동이 온수를 이용할 수 있었다. 잠시 기다려 달라고 요청한다. 얼굴에 궁금증으로 가득차 있다는 그 직원은 내게 어디서 오는 길이냐며 묻는다. 레에서 왔다는 내 대답에 그곳은 지금 어떤지를 묻는다. 인도에 살고 인도 국적을 가진 이 직원에게도 레는 먼 곳이고 쉽게 갈 수 있는 곳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한다. 궁금증을 해결한 직원이 종을 흔들자 그 종소리는 멀리 퍼졌다. 그 소리를 듣고 나이든 노인이 나타났다. 키가 내 가슴까지도 않오는 나이든 직원의 신분이 가장 낮은 것 같다. 그리고는 내 짐을 들겠다고 한다. 제가 오히려 업어드리고 싶다는 표현을 하지만 그 분은 표정도 없다. 내가 오히려 무안해지는 순간이다.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그럼 음침한 방일거라는 예상이 적중했다. 짐을 풀었다. 그 사이 한결같은 표정을 유지하는 나이든 직원분은 양손에 뜨거운 물이 담긴 양동이를 들고 오셨다. 다음부터는 제가 직접 가지러 가겠습니다. 내 영어가 짧았던 것인지 내 영어가 무색할만큼 대답 또한 들을 수 없었다.
뉴델리 역으로 간다.
순백의 셔츠를 입은 청년이 내게 다가온다. 그는 마치 자신의 나라를 대표하는 외교관인 것 마냥 친절하게 기차 이용방법에 대해 설명한다. 뉴델리역은 1층과 2층으로 나눠져 있는데, 1층 부스에서 작성해야 할 것이라면서 질나쁜 종이 한장을 내민다. 그리고는 뉴델리역 오른쪽으로 들어가서는 2층으로 가라고 한다. 그리고는 자기 고향이 자이뿌르라면서 여행하기 좋은 곳이니 꼭 가보라고 한다. 친절한 청년임이 분명하다. 그러고보니 인도로 오는 비행기에서 내 옆자리에 앉은 그 분이 말한 곳은 제프가 아니라 자이뿌르구나..알아 듣질 못했었구나.
순백의 셔츠 청년이 말한대로 뉴델리역 오른쪽으로 들어가서 2층으로 가고자 하는데 무지막지하게 생긴 콧수염아저씨가 날 막아선다. 기차는 이미 만석이니까 국가가 운영하는 곳이 있으니 그 곳으로 가보라면서 주소 써주며 우연히 지나가는 오토릭샤를 잡아서는 그 주소를 건내며 호의를 베풀어준다. 50루피면 가는 거리라며 돈을 준비하라며 친절함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주소를 쓰는데 사용했던 내 펜을 자기 주머니에 넣어버린다. 친절한 사람에게 그정도는 줄 수 있어. 하나도 아깝지 않지.
역시나 푸근함과 친절함의 절묘함을 인상에 그래도 옮긴 듯한 관광청 직원이 있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기차가 없으니 버스를 타란다. 49달러란다. 달러를 입에서 뱉기전까지는 그는 참 인정스러운 사람이었다. 계획까지 체계적으로 짜줬으니 말이다. 하지만 터무니 없는 가격에 뉴델리역에서 부터 만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랏다. 한 방 날리고 싶어졌다. 내 두 발로 멀쩡히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오토릭샤를 잡았다.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뉴델리역으로 가자고 말했다. 그 순간, 나는 마음 수양이 더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닳았다. 뉴델리역은 바로 앞인데 왜 걷지않느냐는 물음에 49달러가 생각났다. 다시 도착한 뉴델리 2층에는 여행객이 많았다.
기차번호, 기차시간, 내 이름 그리고 여권번호를 적어서 제출한다. 내일 오전 10시 25분 아그라행 기차이다. 240루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