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낮에 18도까지 올라가던 봄날은 돌연 잠적했고 그 자리는 비를 가득 머금은 구름과 강추위가 차지했다.
다시 오리털을 채운 옷을 꺼내 입는 사람들이 생겼다. 이런 날이 사흘동안 계속 되었는데, 가족과 연인들에게 주말 나들이를 선물하려고 토요일 아침이 밝음과 동시에 파란하늘로 배경색을 달리하였다.
그렇게 나는 집 앞 真觉寺를 갔다. 상당한 학술적 가치가 있는 탑이 있는 곳이며 북경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지만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탑의 존재조차 모른다. 주말에도 책과 씨름하는 내 동료들 중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이 곳을 제외하면 주변은 온통 사람들로 가득하다. 특히 주말에는 동물원을 찾은 사람들로 지하철이 전쟁터로 돌변한다. 유일하게 이 곳만 한적하다.
이 곳은 이름만 절이다. 현재 절은 존재하지 않고 가장 상징적인 탑만 존재한다. 그 탑은 金刚宝座塔으로 인도 양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중국에서도 4곳에서만 볼 수 있다.
잘 다니는 나는 4곳을 모두 가봤다. 하하……..
《釐延千梵》
인근에 있는 香山碧云寺는 내가 북경에 막 온 2014년 국경절에 간 곳이다. 당시 중국말이라고는 인사 밖에 할 줄 몰랐고, 지도 하나 들고 香山을 향하는 버스를 탔다. 한자의 의미를 그대로 영어로 바꾸면 향기나는 산이기 때문에 “Mountain Fragrant”가려면 어디에서 내려야하냐고 여러 차례 물어봤지만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부끄럽다.
昆明官渡古镇에 있는 金刚宝座塔은 나머지 세 곳의 탑과는 조금 다른 형식이다. 크기 또한 작지만, 시기는 가장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昆明외곽에 위치하고 있는데, 목적지가 이 탑은 아니였고 새로 건립하여 이전된 云南省박물관을 본 뒤 맞은편에 위치한 古镇에서 쌀국수를 먹고 우연히 본 것이다. 당시 비가 내렸고 자세히 보지 않았었다. 이후에 그 것이 탑인지 알았다.
마지막으로 내몽고 呼和浩特에 위치한 金刚座舍利宝塔은 광활한 몽고 초원을 보러 가는 길에 잠시 들린 곳이다. 스스로 불교신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여행을 시작하고 끝날 때 주변에 절이 있으면 인사하러 간다. 이번 여행을 무사히 마치게 해달라고, 그리고 무사히 마치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렇게 만났다. 북경 真觉寺과 모습이 거의 비슷하다. 쌍둥이 같다.
탑만 남겨 놓고 떠나버린 真觉寺의 소멸 원인은 여러 가설이 존재한다. 첫번째, 1860년대 영국프랑스 연합군의 북경 침입 두번째, 1900년에 발생한 의화단 운동 세번재, 1927년 북경을 점령하고 있던 북양 군벌 그리고 마지막은 문화대혁명..
중국 사람들이 문화대혁명이라는 소재를 꺼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그 시기 중국의 문화를 말살 당했고 찬란한 문화는 시대를 역행했다. 하지만 문화대혁명과, 북양 군벌 시기에 소멸되었다는 가설은 말그대로 가설이다. 왜냐하면 어렵지 않게 1923년 이미 탑만 남아버린 사진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사진작가 독일사람 Ernst Boerschmann)
우리 서대문(돈의문)이 1915년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됐다는 기록이 있는데, 어찌 중국에서는 이런 기록조차 정확하게 없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