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일을 하다가 주춤거렸다. 무언가가 업무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었다.

1년전쯤 보고서를 보다가 경남 합천()의 한자지명표기가 협천이라는 사실에 의아해했었다.

그래서 이 곳의 지명에 더욱 친근해 지기로 마음 먹었다.

합천(陜川)이란 표기도 동시에 사용되고 있었다. 어떤 이는 이 곳이 좁은골짜기에 흐르는 하천에 유래하여 협천이라 하였으나, 1914년 3월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분지를 이루고 있는 "초계"와 "삼가"가 합천군으로 편입되면서 좁은 계곡 또는 좁은 내라는 뜻에 맞지 않다하여...
“세 개의 고을이 合하여 이루어진 곳”인 합천으로 불러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한자식 표기방법은 그대로 존속하나 말할 때와 읽을 때는 “합천”이라고 한다고 전한다.
-출처 http://hapcheon.kccf.or.kr

대야(大耶)는 ‘하래 ’ 로 읽는 것이니 낙동강 상류를 일컫는 말인데, 김유신전에는 대야를 ‘대량(大梁)’이라고 기록하였다. ‘야(耶)’ ‘양(梁)’ 등이 옛날에는 다 ‘라’ 혹은 ‘래’로 읽은 것이고, 대야를 신라 말엽에 협천(陜川)으로 고쳐 후세에는 이것을 ‘합천’이라 읽었으니 당시에는 합(陜)의 첫소 리 ‘하’와 내(川)의 뜻 ‘래’를 따라 ‘하래’로 읽은 것이었다.
- 단재 신채호 「조선상고사」

어떤이의 블로그에서 찾은 자료(습자지)에서는 협천이라는 한글표기가 되어있다.



또한 경남 창녕군 창녕읍에 위치한 퇴천리(川里)도 한자지명표기는 토천리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 곳 사람들은 퇴천리라 부른다.

한글 학회에서 1980년에 초판된 한국 지명 총람 10(부산편경남편3)를 편다.

토천-리(
川里)[토끼내, 토천, 튀끼내] 본래 창녕군 창락면의 지역으로서 마을 앞에 토끼내가 흐르므로 토끼내 또는 튀기내, 토천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거울내, 생광, 우진기, 창락동을 병합하여 토천리라 하다가, 1955년 7월 1일 법령 360호에 의하여 창령면(읍)에 편임됨.

위 책에서는 토천리라고 표기하고 있다. 궁금증을 풀기 위해 창녕에 사는 후배한테 연락을 취한다. 물론 창녕읍사무소에도 전화를 넣어보았다.
후배 역시 퇴천리로 알고 있으며 자세한 것을 지인에게 물어 알려준다.
특별한 이유는 모르겠다며 다들 퇴천리라 부른다는 것이 후배의 답변이였다. 후배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자세한 것은 그 곳에 방문해봐야겠다.
즐거운 하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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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residential timbe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