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이나 더웠던 날, 가족과 함께 외조부 외조모 산소를 찾았다.

못난 아들 걱정에 엄마는 늘 '엄마'라는 매력적인 신분에서 변함이 없다. 어쩌면 이 못난 아들은 늘 효도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의 필요성을 확인 시켜 드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엄마의 고향에서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머물고 계시는 엄마의 부모님을 만나뵈러 갈 때에는 엄마도 어느덧 추억 많은 막내딸이 된다.

비가 오면 학교를 가지 않았다는.. 아니 갈 수 없었다는 어린 모습의 엄마를 그린다. 여자 아이는 꽃신을 신었고, 노를 저어 가는 배를 타고 학교에 갔다. 국민학교가 꽤 멀리 있었다. 그 작은 아이는 걸어다녔다. 학교에 가면 그 동네 아이들이 텃세를 부리기도 했다. 그런 특권의식같은 것은 내가 가서 혼내줘 버리고 싶지만, 그 당시 엄마는 나라는 아들을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4ㆍ5일 장이 서는데, 그런 날은 외조부님이 학교로 찾아오셔서 엄마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장에 가서 찐빵을 먹였다고 한다. 당시 찐빵에 설탕을 뿌려줬다는데, 집에서 여러차례 찐빵을 만들어 보곤하시지만 그 맛을 결코 느낄 수는 없나보다.
 눈이 내린 밤, 길이 막혀 터미널에서 오고 가고를 못하는 여동생을 위해 횃불을 들고 칠흑같은 어둠을 걸어오신 외삼촌의 이야기는 괜히 외삼촌님께 감사함을 표하고 싶어지게끔 한다. 막내딸이고 여동생이였던 엄마에게만 추억이 가득한 시골집이 아니다.

초등학교때 외조부님이 돌아가셨는데, 그때 나는 모처럼 만난 사촌들과 어울린다고 내 가족이 떠났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했다. 장례 절차 동안 조문객들을 피해 마을회관에서 생각 없이 놀았다. 하지만 외조부님의 관이 차가운 땅에 묻힐 때, 나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시골집은 내게 놀이터 이상의 공간이였다. 도시에서 가져온 잠자리채를 들고 목에는 채집통을 걸었다. 그 채집통에 잠자리들이 서로 부딪겨 움직이지 못할 만큼 많은 잠자리를 담았다. 월등한 크기를 자랑하는 황금빛 왕잠자리를 처음 잡은 곳도 그 곳 시골마을 저수지에서 였다. 파브르 곤충기를 써 볼 생각이었을지도 모른다.



외조부님의 낚시대를 몰래 들고 낚시를 하러 갔다. 낚시를 할 줄도 몰랐고, 미끼도 없었다. 어디서 봤는지 남들 하는 동작을 따라해 본다. 낚시대를 들고 머리 위를 지나 등 뒤로 간다. 그리고 두 손을 가슴으로 힘껏 당긴다. 그러면 내 낚시 줄은 내 머리 위를 있는 전선에 걸린다. 한 동안 전선에는 내가 장식한 수 많은 낚시줄 모빌이 가득했다.
나뭇가지를 잘라 낚시대를 만든다. 그리고는 무작정 나뭇가지 끝부분을 보며 기다린다. 그렇게 쪼그려 앉아서는 무언가가 잡히길 기대하지만 어느새 나는 졸음을 못 이겨 꾸벅거리기를 반복하다가 얼굴이 땅에 고꾸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두 손에 진흙을 묻히고 만다. 팔다리가 짧았던 나는 경운기를 논두렁에 빠뜨리기도 했다. 볏짚에 콩을 구워 먹다가 얼굴에 까만 숯검둥이를 묻이고 히죽 거리기도 했다. 시골집에만 가면 울기만 했던 내 동생은 어느새 징그럽도록 커버려 형인 나를 위에서 내려다보게 되었다. 

외조부 외조모의 산소는 생전 대추나무와 복숭아나무가 무성했던 그 곳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위치한다. 지금은 곳곳에 핀 패랭이꽃만이 산소의 허전함을 채워주고 있다. 그 곳에서는 내가 자란 시골집도 보이고, 밭에 물을 공급하던 연못이 보인다. 그렇게 넓어 보였던 연못은 너무나 작아 보인다. 

시골집 뒷산에 있는 외증조부님 산소를 찾는다. 예전에는 이 곳까지 오기 위해서는 목 아래 까지 차는 숨을 여러 차례 참으면서 왔다. 1998년, 마을 곳곳에 도로가 생겼다. 비가 와도 차가 다닌다. 마른날 차가 지나가도 빨래에 흙먼지가 묻지 않는다. 산소 주변에는 아토피와 암 치료에 효능이 있다는 와송이 가득하다. 산초나무 그리고 개복숭아나무가 적잖게 보인다. 나는 키가 크고 수염이 무척이나 길었다는 외증조부님을 뵌 적은 없다. 물론 배씨 집안의 사위가 된 아빠도 뵌 적이 없다. 

1968년 음력 4월 20일 외조부님은 시골집을 지으셨다. 선박의 용골과 같은 , 그러니까 척추와 같이 중요한 중심 역할을 하는 중심 통나무에 외조부님의 멋진 필체로 남겨 놓으셨다. 흥선대원군의 서체만큼이나 자획이 분명하고 힘이 넘치는 자체이다. 오래된 이 집에 구석구석 어렷을적 추억이 깃들어 있다. 아궁이에서 불장난을 하루종일 해보았다. 그때는 왜 그렇게도 병풍지에 손가락이 갔을까. 벌집마냥 수 많은 구멍을 만들었고 유리창도 여러번 깨뜨렸다. 지금은 여러번의 보수 끝에 다소 어색한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마당이 좁아진 것 말고는 모두가 제 위치에 있다. 아! 최근, 큰외삼촌님이 마당에 있는 우물을 제거해 버렸다. 이제 그 곳에 살던 개구리 녀석들을 볼 수 없다. 

바람이 잘 드는 곳에 호박잎을 건조 시키고 있다. 왠지 잘익은 감을 보듯 탐스럽다. 풍요로운 시골이다. 하지만 지금 이 마을에는 빈집이 생기고 있다. 과거 집집마다 잔치를 열었고 그때는 사람들이 마당을 가득 채웠다. 이제는 보기 힘든 풍경이 되어 버렸다. 

뒷집에 사시던 할머니도 몇해 전에 세상을 떠나셨고 지금은 할머니의 외삼촌뻘 되는 분이 사신다. 염소가 지나던 골목에는 아무도 다니지 않는다. 

마당에 감나무는 그대로 있지만 포도나무가 없어졌다.

겨울이 되어도 토끼굴 앞에서 불지피는 풍경 볼 수 없고 족제비가 장닭을 물어갈까봐 밤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제 보다 높은 곳에서 닭모이를 넓게 뿌려 줄 수 도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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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residential timbe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