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는 길, 늘 지나다니는 그 길에서 봄을 찾았다.

어제부터 내린 비가 봄비였음을 확인 할 수 있는 훌륭한 발견이였다.

노란 개나리가 꽃을 필 준비를 하고 있다. 물론 고른 배분 능력을 갖추지 못한 햇님 덕에 도로 쪽으로 나온 가느다란 팔뚝에만 노란빨래가 널려 있다. 반대쪽에는 아직 앙상한 겨울이다. 그 위에 자리 잡은 소나무가 겨울에도 푸른잎을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음지에 놓인 그 가지에게 봄 소식은 아직 이른 이야기다.

지난학기 처음 인연을 맺게 된 원예학에는 이제 제법 친근한 얼굴이 많다.
하지만 이번에 듣게 된 수업들은 대부분 3학년 과목이기에 처음 복수전공을 시작했던 그 날이 떠오른다.

넓은 바둑판 한가운데 홀로 검은돌로 남겨진 그 상황. 어렸을적 감기에 걸리면 그럼 꿈을 꾸곤 했다. 세상 가운데 홀로 서 있는 꿈.

어찌되었든 새로 듣게 되는 수업에 설렘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더군다나 그 과목의 선생님이 처음 뵙는 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나는 10분을 벼티지 못하고 졸음과 전쟁을 시작한다. 

초등학교 1교시는 35분, 초등학생의 최대 집중력은 35분이라는 놀라운 연구 성과가 이러한 수업시간을 결정하게되었다. 

하지만 나는 초등학생 보다 못한가 보다.

가끔 그런 내가 한심했다. 책을 읽고 무언가를 배우는 즐거움은 나를 기쁘게 만들지만 , 모든 책상을 침대로 착각하는 내 신체와 정신은 언제나 나를 걱정시킨다. 10년 뒤 내가 뭘 하고 있을까.

어렷을적부터 나를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고 함께한 부모님께...실망하시지는 않도록 내 상황을 농담하듯 살짝살짝 던져보곤한다.

엄마아빠 닮아서 그렇다고 그냥 웃어 넘겨주시는 부모님이 참 고맙지만..

뭐..무엇보다 24년 전 나를 낳아 주신 부모님께 하늘같은 감사함은 내 평생을 바쳐야한다.




수업시간이 지났는데 선생님은 아직 등장하시지 않았다. 얼마나 화려하게 등장하시려고 늦으시는지는 알 수 없지만 처음 뵙게 될 선생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한 것은 사실이다.

그때 옆자리에 앉은 한없이 착해 보이는 남학생이 나에게 말을 건다.

" 혹시 재작년에 스키 수업듣지 않았나요?"

하하하. 내가 스키 수업을 들은지 벌써 재작년인가.

"저 같은 반이였는데, 기억 하세요? 고고학과라길래 형이라는 거 알게 됐어요"

이런 고마운일이, 누군가가 날 기억해준다는 것은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다.

물론, 조금 쑥스럽기도 하다. 그 어색한 분위기를 날려버리기 위해 엉뚱한 농담 하나 던져본다.

"하하하! 그때 제가 나쁜짓 하거나 그러진 않았죠? : )"

"물론이지요 : )"

그래! 내가 물론 나쁜짓 했을리가 없다. 스키만 타고 수업이 끝나면 바로 방에서 자버렸으니까..

그 흔한 방팅(?)도 하지않고  잠만 잤다. 스키만 탔다.


생각이 났다. 그 착한 아이도 나와 함께 일찍 잠든 멤버 중 하나였다.

고맙게도 그 아이는 나에 대해 많은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스키 수업을 마치고 그 다음날 나는 시드니로 갈 예정이었다.

그 아이는..내가 중국에 갈 예정이였다고 기억을 했지만, 그래도 이 곳에서 두 사람의 인연이 이어진것 보다도,

잠깐동안 함께한 나를 기억한다는 그 아이의 기억력이 놀랍고 고마울 뿐이다.



6시가 다 되어 수업을 마쳐주신 선생님이 조금은 얄밉지만, 기분 좋게 기숙사로 돌아가는길

후배의 우렁찬 전화를 받고 기분이 또 좋아졌다. 인적이 드문 그 곳에서 우산을 휘두르면 신나게 뛰어 본다.

하하하. 좋은 날이구나. 이런 날에는 역시 도서관을 가야지!!

언제나 사람 가득한 우리 학교 도서관. 종이 냄새 물씬 풍기는 도서관이 좋다. 맘에 드는 책 한권 집는다.


신입생부터 인연이 된 연구소 선배한테 전화가 온다.

"식사 한끼 해야지?"

매년 같은 날 나를 찾아주는 연구소 식구들이 있어서 나는 또 웃게 된다.

벌써 5년이 되었구나. 5년 전 발굴을 함께 했다.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경환 선배, 준코 선배..

모두 너무 감사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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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Presidential timber:D